滁州西澗 (저주서간) 韋應物 (위응물)

滁州西澗(저주서간) 韋應物(위응물)

獨憐幽草澗邊生(독린유초간변생)
上有黃鸝深樹鳴(상유황려심수명)
春潮帶雨晚來急(춘조대우만래급)
野渡無人舟自橫(야도무인주자횡)

저주의 서관 - 위응물(韋應物)

개울가에 자란 풀 홀로 어여쁘고
꾀꼬리는 나무 깊은 곳에서 울고 있네.
봄 강물은 비에 불어 밤 되니 더욱 세찬데
나루터에 사람은 없고 배만 홀로 걸쳐 있네.


滁州西涧(Chúzhōu Xījiàn)

滁 강 이름 저 | 州 고을 주 | 西 서녘 서 | 澗 산골 물 간 |


제목은 '저주(滁州)의 서간(西澗)'이라는 뜻이다. 저주(滁州)는 지금의 안후이성[安徽省] 추현[滁縣]에 해당되며, 서간은 당시 저주성 서쪽 교외에 있던 개울의 명칭이다. 위응물이 당나라 덕종(德宗) 때인 781년 저주의 자사(刺史)로 임명되어 재직할 때 지은 시이다. 위응물은 도연명(陶淵明)의 시풍을 계승하여 산수전원을 묘사한 시를 지었고, 우아하고 담백한 시세계를 이룬 시인으로 평가된다.

이 작품은 봄 들판의 경관을 빼어나게 묘사하여 위응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, 특히 3 ~ 4구가 명구(名句)로 회자된다. 한편, 이 시는 단순하게 산수경물을 읊은 것이 아니라, 개울가 풀은 지은이 자신, 꾀꼬리는 아첨하여 요직을 차지하는 무리를 상징하며, 물살이 급해지는데도 사람을 태워 물을 건너야 할 배가 나루터에 그냥 걸쳐 있는 광경은 한직(閑職)에 임명되어 뜻을 펼치지 못하는 지은이의 불우한 처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.


참조항목

중당(中唐)

당시(唐詩)의 4시기 구분에서 성당(盛唐)과 만당(晩唐) 중간에 낀 시기. 대력연간(大曆年間:766∼779)부터 태화연간(太和年間:827∼835)에 이르는 약 70년간이다. 성당 말기의 안사(安史)의 난 이후, 종래의 귀족문화는 기울었으나 새로운 사대부층의 합리성을 존중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심정을 배경으로 하여 신선한 걸작들이 나왔다. 초기에는 위응물(韋應物) ·유장경(劉長卿) 및 대력십재사(大曆十才士) 등이 이름을 날렸으며 이윽고 원화(元和)연간에 이르자 한유(韓愈) ·유종원(柳宗元) ·원진(元稹) ·백거이(白居易:樂天) 등 거장을 배출하여 고시(古詩)가 번창하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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